오송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있는 고 조모씨의 책상. 직원들이 가져다 놓은 조화와 꽃병에 담겨 있다.
[소셜미디어태희=안태희]
“정말 착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던 직원이었는데, 너무 안타깝고 뭐라고 말할 수 없이 슬픕니다”
오송참사로 희생된 고 조모씨가 다니던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 직원 A씨의 토로다.
고 조씨의 사망이후 언론사 여러곳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응대하느라 지친 그는 ‘죄인’같은 기분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왜 토요일에 출근시켰냐’, ‘왜 비정규직에게 그 일을 시켰냐’라는 비난성 질문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고 조씨는 지난 4월에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에 채용돼 엑셀러레이팅실에서 근무하면서 지역혁신(RIS)사업을 전담했다.
RIS사업 자체가 1년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사업이 시작된 뒤 관련 업무를 하는 직원을 채용하게 되고, 고인도 이런 과정에서 일을 맡게 됐다고 한다.
고 조모씨의 책상에 고인이 쓰던 노트북과 탁구채, 스티커 사진, 우산등이 그대로 있다.
토요일인 지난 15일 오전 일찍 출근하게 된 것은 RIS 사업 프로그램의 하나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당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측은 고인만 그 일을 한게 아니고, 정규직인 다른 직원도 그 전 주에 해당 교육업무를 했고, 당일에는 조씨가 교대로 이 일을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결국 그날 그는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서 살고 있던 그가 사고를 당한 747버스를 탔고, 그 버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고인의 빈소에는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 뿐만 아니라 전국의 센터에서 조화와 함께 조문을 하러 많이 왔다고 한다.
이제 그 일은 다른 사람이 하겠지만, 그가 남긴 긍정의 에너지는 메꿔지기 어려울 것이라는게 A씨의 말이다.
20일 지금도 고인이 쓰던 책상위에는 직원들이 가져다 놓은 조화가 꽃병에 담겨 있다.
고인의 자리에는 탁구채와 스티커 사진, 노트북, 그리고 다시는 쓰지 못하게 된 우산이 그대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