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1946년 독일어로 발표한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는 당시 독일사회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왔다. 두고 온 어린 시절 고향마을을 아주 담담하며 서정적으로, 때론 익살맞게 그려내고 있다.
그의 독일어 소설을 읽어본 이라면 그가 오랜 망명객의 삶을 살았으면서도 얼마나 단아하고 고매한 정신세계를 잃지 않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나도 그의 삶 이전에 그의 소설을 읽고 그의 팬이 되었다.
그의 소설은 일부 독일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한다. 그의 소설은 1960년대 뮌헨에 유학했던 전혜린에 의해 "압록강은 흐른다 "로 번역돼 나왔다. 전혜린이 그토록 사랑했던 슈바빙(Schwabing) 거리 한 가운데 얼마 전 부터 "이미륵 문화공간"이 열렸다. 평생을 이미륵 추모와 알리기에 바쳐 온 송준근 선생이 자신의 사재를 털어 만든 곳이다.
이미륵은 일본의 동맹이었던 나치 독일에서 생애를 보냈다. 경성의전 학생으로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경찰의 추적을 피해 상해를 거쳐 독일로 망명한 그의 존재는 나치 당국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런 엄혹한 조건 아래서도 그는 반나치 투쟁에 앞장섰다 처형당한 후버(Prof. Kurt Huber) 교수 가족을 은밀히 도왔다. 후버 교수는 역시 반나치 투쟁의 상징이 되었던 백장미 숄 남매의 정신적 지주이며 스승이었다.
이미륵은 독일 친구들도 접근을 꺼려했던 후버 교수 가족에게 자신이 배급 받았던 식량을 몰래 전해 주었다. 그의 이러한 인품이 독일인들이 그의 작품뿐 아니라 인간을 잊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번 추모식에는 후버 교수 이름을 딴 '쿠르트 후버 고등학교' 그로스 교장도 왔다. 그가 그의 묘비 앞에 한국 식으로 술을 따르고 두 번 절하는 광경을 묘한 감동으로 바라보았다.
이번 이미륵 박사 추모제는 뮌헨교민들로 이루어진 이미륵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치러졌다. 온전히 회원들의 회비와 노력봉사로 이루어진 행사였다.
오랜 시간 봉사해 오신 송준근 선생이 고령으로 물러나고, 박수영 회장을 비롯해 비교적 젊은 세대에게로 그 일이 넘겨졌다. 이번 추모제에서도 제물로 많은 음식이 준비되었다.
그 많은 음식들을 교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다 준비해 왔다. 추모식이 끝난 후 참가자들이 다 함께 둘러앉아 제사 음식을 나눠먹는 풍경이 참 좋아보였다. 벌써 여러해 째 이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는 뷔스트(Frau Wüst) 그래펠핑 제1시장이나 쾨스틀러(Herr Köstler) 제2시장 모두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려 음식을 나눈다.
새롭게 회장을 맡은 박수영씨는 등단 작가이다. 이숲이라는 필명으로 내놓은 '스무살의 내한민국'은 과거 일본 식민주의자들과 그에 영합한 서구인들이 왜곡해 놓은 한국인 상을 새롭게 복원해 내고 있다. 그외에 많은 회원들이 넉넉치 않은 여건 하에서 각자 열과 성을 내어 이미륵 추모 사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누가 알아주던 말던 묵묵히 자기 몫을 감당하고 있는 이 분들이 자랑스럽고 고맙다.
전세계 170여개국에 700만 이상의 우리 동포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 흩어져 간 저마다의 사연은 다 다르겠으나, "민들레 홀씨되어", 떨어진 땅에 각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삶이 때로는 애잔하고, 때로는 대견하다.
1박 2일의 뮌헨 출장. 대사랍시고 교민들에게 뭐 해준건 없고, 분에 넘치는 대접만 받고 왔다. 우리 선한 이웃들에 대한 상념으로 하루를 보냈다.